오랜만이예요 Carlos입니다.

‘오늘은 날씨가 참 좋으네’하고 감탄하고 있다가 문득 돌이켜보니 제가 San Francisco로 온 게 딱 1년이 되었더라구요. Golden Gate Park의 따뜻한 햇살과 코끝을 스치는 바람이 기분 좋던 작년 오늘, 무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해방감을 느끼게 하는 이 도시에 반했던 것 같아요. 사진으로만 봤던 금문교라든지 한국인이 좋아하는 팝송하면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Scott McKenzie의 San Francisco란 곡 정도 말고는 전혀 아는 바가 없던 이곳이 어느새 제게 의미있는 공간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그간 참 재미난 일이 많았어요.

첫번째 에피소드-
이사온 지 한달쯤 지난 어느 날 아침. 실수로 열쇠를 집 안에 두고 문을 잠가버린 적이 있었어요.
하필이면 그 날은 바람이 세차게 불고 비까지 을씨년스럽게 내리고 있었지요.
주위에는 아는 이 하나 없고, 전화기는 물론 지갑도 몽땅 놔두고 나온 상태라 꼼짝없이 룸메이트들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어요. 그들이 돌아오기까지는 대여섯 시간 남았을까.
아! 추웠어요. 정말 추웠어요. 히말라야보다 더 춥고 막막했다면 그 때의 마음이 표현될까요.
집 앞에서 서성인지 한 시간쯤 지났을 때 호랑이만한 개를 데리고 동네를 산책하던 어떤 사람이 지나가며 “how’s it going?”하고 말을 걸었어요. 우리말로 “안녕?” 정도 되는 이 말에 나도 모르게 “안녕하지 못해!”라고 대답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어요.
이제는 직원 하나 하나와도 잡담을 할 정도로 단골이 된 Velo Rouge라는 동네 까페에 대한 이야기며,
어느 유명한 호텔에서 주방장을 하다가 은퇴하고 소일거리 삼아 일주일에 목금토일 나흘만 저녁에만 한다는 그 옆 스시집 주인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몇시간이나 말동무를 해주고는 커피도 사주며 까페에 들어가서 기다리라고 해줍디다.
아직 낯설었던 이곳에서 처음으로 이웃이란 게 생겼구나 싶었어요. 마음이 참 따뜻해졌습니다.
Matt이라는 이름의 이 친구는 이쁜이란 이름의 여자친구와 함께 얼마전에 다른 곳으로 이사갔지만 요즘도 비가 내리는 날이면 생각이 납니다.

두번째 에피소드-
제가 처음 왔을 때만 해도 밤이 새도록 울기만 했던 아랫집 꼬맹이가 있어요.
같은 건물에 살다보니 그 아이의 가족들과 마주칠 일이 종종 있었는데요.
얼마 전에는 그 아이가 돌이라며 초대를 받아서 가게 되었어요.
선물로 뭘 해주면 좋을까 골똘히 생각하며 해바라기마냥 광합성을 하고 있는데,
마침 그 아이의 할머니가 아이를 안고 광합성을 나오셨더라구요.
예전에는 저만 보면 뒤로 숨던 아이가 어느새 눈도 마주치고 까꿍하니 생긋 웃는데

아…!!!

그 순간 정말 마법같이 제가 얼싸안고 있던 세상 근심님들 걱정님들 모두 어디로들 가셨는지…
그 아이에게 이 순간을 오래도록 간직하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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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어쩌면 이렇게 여행과 정주를 반복하며 이런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만들어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이런 생각하면서 잘 지내요 저는.
당신은요?

 

Velo Rouge에서
Carl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