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2일 일기 중에서-


어떤 할머니가 손주를 안이뻐라 하겠냐만 나의 할머니는 유독 나를 끔찍히 아끼신다. 되돌아보면 언제나 그러셨다. 시골에 가면 언제나 할머니는 수일 전부터 준비한 식혜와 곶감과 옥수수와 이런 저런 산나물을 손수 내오시곤 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무뚝뚝하기 짝이 없는 손주란 놈은 ‘사랑해요 할머니’ 한마디가 그리도 어려웠나보다. 그런 내가 뭐가 그리 좋으신지 이젠 당신 자식들은 별로고 손주들 보는 게 그리 좋으시단다. 그걸 알면서도 안부 전화도 자주 못드렸다. 어쩌면 항상 그랬던 것처럼 언제까지나 그곳에 계실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3년 만에 다시 찾은 한국. 이제 여든이 가까운 할머니를 뵐 날이 얼마나 있겠나 싶어 시골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창 밖으로 서울의 빽빽한 빌딩 숲은 점차 나무로 산으로 들로 논으로 변해간다. 변해가는 풍경처럼 내 마음을 채우고 있던 번잡함들이 점차 옅어간다. 세 시간쯤 지났을까 운전기사 아저씨의 반가운 목소리.

“다인요, 다인 내리세요.”

뜨거운 햇살에 달리의 그림마냥 녹아내릴 듯한 전경이 펼쳐진다. 아무렇게나 서 있는 트럭 몇 대와 태울 손님을 찾아 두리번 거리는 택시 기사 아저씨들까지 모든 게 낯익다. 현재의 내가 과거의 공간과 마주하는 묘한 순간.

나의 시골집은 이곳에서 차로 30분 남짓 걸리는 정말이지 첩첩산중이다. 마침 마중나오신 작은아버지의 트럭을 타고 할머니가 계신 곳으로 향한다.




몇 년 전 아버지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었다.

“어릴 적 그리도 커 보였던 비봉산이 지금은 참 작아보이는구나.”

어린 나에겐 개울 옆 느티나무가 그런 존재였다.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존재. 그 때의 아버지처럼 나도 저 느티나무가 참 작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생각에 잠겨있다 보니 어느새 시골집에 당도했다. 아니나 다를까 무엇하나 변함이 없다. 그 때 바로 그 순간처럼 할머니는 마당에 고추를 말리고 계신다.




어느덧 밤.
아직 집 안은 한 낮의 열기를 머금은 채 후끈하다. 주무실 시간인데 할머니께서 밖으로 나가시길래 물었다.

“어디 가시게요?”
“더워서 밖에서 자련다.”


조용히 따라가 할머니 옆에 눕는다.


저 멀리 빼곡한 별들과
코 끝을 스치는 시원한 바람과
할머니의 숨소리가
참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