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던 책들이 한국에서 날아왔다. 반가운 사람들과 오랜만에 만나 즐겁게 이야기하며 소개받은 주옥같은 이 책들을 나의 비루한 책장은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이 먼저 간 건 다름 아닌 <윤미네 집: 윤미 태어나서 시집가던 날까지> (전몽각 作)라는 사진집이었다. 아마추어 사진작가인 아버지가 딸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시집가던 날까지 26년간의 사진을 한데 엮은 것이다. 굳이 따진다면 나와는 하등 상관 없는 남의 가족 사진들일 뿐이지만, 매 순간 뷰파인더 뒤에서 웃으며 셔터를 눌렀을 작가를 생각하다 보니 이런 저런 것들이 떠올랐다.

 

아버지와 사진과 나

몇 년 전, 친구들과 각자의 최초의 기억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한 친구는 할머니 등에 업혀서 석양을 보던 기억이 최초라 했다. 두 살 때쯤이었다고 했던 것 같다. 그 때 내게 당장 떠오르는 기억이 없어서였는지 그저 회고적 취향이 강해서인지 그 이후로 간혹 흐릿한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보는 습관이 생겼다. 아직 ‘이거다’할 만한 뚜렷한 순간은 잡아내지 못했지만, 기억할 수 있는 모든 순간에는 아버지가 계셨다. 언제나 사진기를 들고.

덕분에 나는 유년 시절의 기억은 사진에 관한 것이 많다. 땅거미가 질 무렵이면 아버지는 나를 단골 사진관에 데려가시곤 했는데, 하루는 주인 아저씨께서 암실에서 갓 인화된 사진들을 들고 나와서는 작두같이 무섭게 생긴 걸로 사진의 가장자리를 자르는 걸 본 적이 있다. 인화지의 일부가 날카로운 칼에 잘려나가며 내는 사각하는 소리와 순간 퍼지는 인화지와 냄새가 참 좋아서 한참동안 코를 킁킁거리며 빼꼼 구경하고 있었다.

다른 이야기지만, 보면 분명 알아볼 것 같은데 사진관 주인 아저씨가 어떻게 생겼는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강산이 두 번 반쯤 변한 이야기일테니 그럴 법도 하지만, 이상한 건 그 아저씨의 얼굴을 떠올리려 하면 어김없이 송해가 떠오른다는 거다. 별로 닮진 않은 거 같은데 왜인지 도통 모르겠다. 사진관 주인아저씨는 점잖고 친절한 중년의 아저씨였던 것 같은데. 가끔 기억이 얽어놓는 연결들은 도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주말이면 우리 세 가족은 집에 있는 법이 거의 없이 산으로 들로 방방 곡곡을 휘집고 다녔는데, 아버지는 툭하면 나를 울릴 골릴 궁리를 하셨던 것 같다. 골리는 게 목적이었는지 우는 사진을 찍는 게 목적이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느 날 좋은 가을이었다. 바람은 상쾌하고 햇살은 뜨겁지도 그렇다고 아직 싸늘하지도 않던 어느 날 우리 가족은 집 근처 산으로 놀러갔다. 물론 그 날도 아버지는 사진기를 잊지 않으셨다. 산을 오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황홀한 갈대밭이 펼쳐졌다. 시원한 바람에 호응하듯 넘실거리던 장면이 뚜렷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버지께서는 기막힌 궁리를 해내셨다. 뜬금없이 키가 더 큰 갈대를 찾는 사람이 이기는 거란다. 게임이나 내기라면 뭔가 상과 벌칙이 있어야 할텐데 그런 건 애당초 있지도 않았던 것 같다. (이 대목에서 나는 아버지의 목적이 날 골리는 게 목적이었다는 강한 의혹이 든다.) 그냥 왠지 지기 싫었던 나는 눈을 부릅뜨고 키가 큰 갈대를 찾아 뛰어다녔다. 처음에는 주거니 받거니 하며 키가 큰 갈대를 찾아냈지만, 어느 정도 되자 나는 더 긴 갈대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갈대들이 나보다 훨씬 키가 큰데 아래서 아무리 올려다 본다고 해도 그게 보일 리가 있나. 지금 생각해보면 별 것도 아니지만 그 땐 그게 그렇게도 서러웠나보다. ‘그거 나 주고 아빠가 다시 찾으라’는 나름 자존심을 굽힌 진지한 요청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기각되었고 토라진 나는 ‘이거 안해’하며 울면서 가버렸다. 아니, 가버리려고 했다. 이때다 싶었는지 아버지는 사진기를 꺼내들고 우는 내 주위를 돌며 연신 사진을 찍으셨다. 미안하셨는지 결국 그 키 큰 갈대를 내게 주시긴 했는데, 그렇다고 갑자기 울음을 그치는 것도 뭔가 억울해서 집에 올 때까지 울었다. 그때까지도 아버지는 우는 날 찍으셨다.

그 시절 아버지는 참 열심히도 내 사진을 찍어주셨고 나는 그 사진들에 둘러쌓여 참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 시절 사진 속의 나는 온 세상의 주인공이었다.

그래서인지 나 역시 사진을 참 좋아한다. 옛 사진을 뒤적이는 것도 좋고 사진을 찍는 것도 좋다. 2009년 초, 꽤나 길었던 학부시절을 마치면서 고마운 분들을 위해 마음을 담아, 그리고 인생의 한 챕터를 잘 끝낸 내 자신에게 주는 선물 삼아 사진을 모아 비디오를 만든 게 계기가 되어 당연하게 여겼던 사진에 대해 깊은 애착을 갖게 되었다.

올 초에는 참 죽이 잘 맞는 어떤 친구가 시집을 간다고 해서 선물로 어떤 게 둘에게 의미있을까 고심하던 끝에 둘의 사진으로 영상을 만들어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결혼식 용으로는 처음이어서 걱정이 이만 저만 아니었는데, 다행히 친구가 아주(?) 마음에 들어해서 정말 뿌듯했다. 그 이후로 지난 번에 소개한 적 있는 아랫집 꼬마의 돌 선물을 포함해서 다섯 편을 만들었고, 그 때마다 나의 시간을 다른 사람을 위한 선물로 치환한다는 것이 얼마나 값진 일인지 강하게 깨닫는다. 이런 식으로 내가 주인공이 아닌 세상에 가끔 침범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나의 이름, 나의 소망, Carlos

누군가와 소개를 주고 받을 때면 어김없이 내 이름이 Carlos가 된 사연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척 봐도 동양인인 내가 영어도 아니고 스페인어 이름을 말하니 신기하다는 표정들이다. 대부분의 경우 이야기가 길어질 것도 같고 그러다 보면 잘 설명할 자신도 없어 그냥 얼버무리고 마는데, 마침 비슷한 이야기기도 해서 꺼내 본다. (여전히 잘 설명할 자신은 없다.)

어린 시절 <내일의 죠(あしたのジョー)>라는 복싱 만화를 감명깊게 봤다. “불태웠어… 모두 불태웠어… 새하얗게…”라는 대사로 요즘도 많이 회자되는, 20세기 소년들에게는 클래식이라고 할 만한 명작 만화다. 한국에서는 <도전자 허리케인>이라는 제목으로 MBC에서 방영되기도 했다. 전쟁의 상처가 채 가시지 않은 피폐한 일본을 배경으로 동네 건달이던 죠가 복싱을 통해 비로소 삶의 의미를 찾고 세계 챔피언을 향해 도전하는 내용이다.

야부키 죠와 카를로스 리베라당연한 얘기겠지만 그 길은 정말이지 멀고 험난하다. 게다가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도 없다. 곤죽이 되도록 흠씬 두들겨 맞으면서도 그저 나아갈 뿐이다. 짐작했겠지만 죠는 터무니 없을 정도로 외롭고 어두우며 정말이지 너무너무너무 진지한 캐릭터다. 그런 그에게 라이벌이 등장한다. 그의 이름은 Carlos Libera. 베네수엘라 출신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호색한에 풍류를 사랑하는, 야생마라는 별명의 호탕한 인물로 죠와는 정반대의 캐릭터다. 불의의 사고로 실의에 빠져있던 죠는 그와의 대결을 통해 슬럼프를 극복하고 삶과 복싱에 대한 열정을 되찾는다. 그리고 그 둘은 눈빛과 주먹만으로 영혼을 나누는 최고의 친구가 된다. (자세한 내용은 직접 보시길)

되짚어보면 나는 Carlos Libera라는 인물을 보면서 어렴풋하게 ‘다르다는 것’과 (주인공이 아닌) ‘조연’에 대해 의식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것은 내가 성장기를 거치는 동안 나의 자아와 세계관 형성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 사건이었다. (‘세계 = 나’라는 등식이 깨진 것이 어딘지 모르게 슬펐다.) 다른 이가 주인공인 세계, 내가 주인공이 아니거나 심지어 내가 존재하지도 않는 세계에 대한 자각은 엄청난 충격이었음을 고백한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거대한 종이 위에 하나의 펜으로 계속 이어지는 선을 긋는다고 가정해보자. 그 펜은 휘발성이 있어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증발해버린다. 하지만 펜을 누르는 힘이 일관적이지 않고 종이 표면이 그 잉크를 흡수하는 정도도 균일하지 않다. 때로는 종이가 접히고 휘어지고 구겨지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어떤 부분들은 다른 부분들보다 잉크의 흔적이 오래 남는다. 그렇게 기억의 명도는 대개 시간의 흐름에 반비례하지만, 시간이 오래 지나도 빛이 바래지 않는 순간들이 있는 걸 보면, 항상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이게 내가 갖고 있던 세계와 삶과 기억에 대한 관념이었다.

그런데 Carlos라는 인물을 만난 이후 갑자기 어디선가 셀 수도 없이 많은 펜들이 종이 위에 등장한 것이다. 아니 그보다는, 보이기 시작했다고 하는 편이 더 옳겠다. 같은 펜은 아닐지라도 수많은 펜들이 나보다 훨씬 전부터 당신들의 선을 긋고 있었고, 내 펜촉이 종이 표면을 떠난 후에도 줄기차게 가지각색의 선을 긋고 있을 테니까.

최근에서야 깨달은 이야기지만, 지금까지 그어온 나의 선에서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증발해버리지 않고 종이에 남아있는 잉크 자국들은 어떤 형태로든 다른 선(들)이 주위에 있었다. 아주 가깝게, 하지만 단 한번도 만나지 않고 그대로 평행선을 긋는다든지, 눈치챌 새도 없이 저 멀리서 날아와 아주 짧은 찰나의 충돌과 동시에 영원처럼 멀어진다든지, 이중나선 모양으로 똬리를 튼 것처럼 얽히고 섥힌다든지 하는 식이다 이를테면.

여기에 어떤 초월적인, 혹은 우주적인 힘이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작용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미시적인 수준에서 그 선들이 서로에게 작용하는 힘은 아주 강력해 보인다. 지금의 나는 이런 종이 위에 그려지고 있는 개별 선들의 역학 관계를 이해하고 짧은 미래를 예측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게 사실이지만, 언젠가 높은 곳에서 내 잉크 자국들의 흐름을 조망할 수 있길 소망한다. 이 역동적인 상호작용들의 기하학적 아름다움과 변화의 패턴을 온 몸의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건 정말 충만하고 짜릿한 경험일 테고, 내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하지만 지금의 나에겐 보이지 않는 그야말로 우주적인 기적들이 경이로움으로 다가올 테니까.

이런 소망을 담아 나는 Carlos가 되었다.

 

그리고, Glenn Gould의 Bach

<윤미네 집>을 보는 동안 Glenn Gould의 가 한시도 내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어릴 적 피아노 학원을 다닐 때 연습하기 가장 싫었던 작곡가가 Bach였다는 걸 생각해보면, 근 몇 년 내가 가장 많이 들은 음악이 Bach의 음악이라는 건 참 아이러니하다.

Glenn Gould(1932-1982)는 Bach의 연주로 잘 알려진 캐나다의 피아니스트이며, 내가 가장 아끼는 피아니스트이기도 하다. 아마도 그에게 Goldberg Variation은 꽤나 각별했을 것 같다. 그를 일약 클래식 음악계의 스타로 올려놓은 1955년 레코딩과 그가 작고하기 1년 전 1981년의 레코딩이 Goldberg Variation인 걸 보면. 특히, 그의 1981년 레코딩을 들을 때면 탁월한 곡 해석이라든지 유려한 연주보다도 그의 연주에 담겨 있는 시간성에 깊은 감명을 받곤 한다. 비록 1955년 레코딩의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상쾌함이나 첫사랑같은 뜨거움은 덜하지만 강같은 평화와 한없이 포근한 온화함이 있다. 딸이 태어나서 시집가던 날까지 26년간 묵묵히 배경이 되어 사진을 찍었던 윤미 아버지의 ‘조연같은’ 사랑처럼 Gould의 26년이라는 세월이 한 음 한 음에 고스란히 녹아든 느낌이랄까.

추측컨대 Glenn Gould는 내가 꿈꾸는 삶의 기하학적인 아름다움과 변화의 거시적 패턴을 Bach의 음악 안에서 온 몸으로 느끼고 있던 게 아닌가 한다. 어쩌면 이 30가지 변주곡들의 패턴에 30년간 끊기지 않은 나의 선이 웜홀을 통해 30년 전 오늘 끝난 Glenn Gould의 선과 조응하는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당신 삶의 조연,
Carl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