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어머니의 추천으로 호시노 미치오(星野道夫)의 <알래스카, 바람같은 이야기>라는 책을 보게 되었다. 그가 도쿄의 어느 헌책방에서 알래스카에 관한 사진집과 마주친 게 스무살 무렵. 극북(極北)의 풍경에 매혹된 그는 알래스카로 떠나고, 20여년에 걸쳐 알래스카의 풍경과 동물, 사람들을 소재로 따뜻한 사진과 글을 남긴다. 지난 음악메일에서 소개한 바 있는 <윤미네 집>에서 딸과 가족에 대한 아버지의 애틋한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면, <알래스카, 바람같은 이야기>에 담긴 그의 사진들은 자연과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경외를 느끼게 한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이 대목을 인용한다.

7월이 되었다. 북극해의 여름에는 지지 않는 태양이 하루 종일 이글이글 내리쬔다. 나무 한 그루 없는 툰드라에서는 당연히 그늘 한 뼘 찾을 수 없고, 바람이 자는 날이면 땀에 흠뻑 젖을 만큼 덥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지평선 너머로 까만 점들이 잇달아 떠올랐다. 점들은 마침내 옆으로 퍼져 선을 이루고, 그 선은 지평선을 따라 쑥쑥 늘어났다. 쌍안경을 꼭 쥐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시선을 모았다.

거대한 카리부 떼가 툰드라 저쪽에서 이쪽으로 곧장 다가오고 있었다. 언젠가 이런 장면과 맞닥뜨리는 꿈을 꾼 적이 있다. 어린 시절 책에서 읽은 장면일까? 만년의 시튼이 마지막 꿈을 이루려고 북극 평원을 여행하는 이야기였는지도 모른다. 툰드라를 가득 메운 전설같은 카리부 떼. 그것이 바로 지금 내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나는 카메라를 준비하고, 벌떡거리는 가슴을 꼭 누르면서 가만히 기다렸다. 수만 마리에 이르는 무리가 시야를 금세 채워나간다. 어미와 새끼가 서로 부르는 소리가 화음을 이루고, 그 화음들이 점차 사위를 가득 채웠다.

그러나 기복이 없는 툰드라는 너무나 편평한 탓에 도저히 이 거대한 무리를 한눈에 내다볼 수가 없었다. 단 1미터라도 좋았다. 사진을 찍으려면 조금이라도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이가 필요했다. 조바심에 애를 태우며 주위를 둘러보지만 편평한 툰드라만 가없이 이어질 뿐…

결국 나는 촬영을 포기하고 툰드라 위에 드러누우며 카메라를 내던졌다. 언젠가는 거짓말 같은 전설이 될지도 모르는 이 광경을 내 기억 속에 남겨두고 싶었다.

시야는 온통 카리부의 바다였다. 자연은 인간을 위해서 혹은 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존재를 위하여 숨을 쉬고 있었다. 나는 그 바닷속에서 수만 마리의 카리부가 울려내는 발굽소리에 그저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상상조차 하기 힘든 오랜 기다림 끝에 카메라를 내던지고 눕는 순간 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때 나는 José James의 Desire를 듣고 있었다.
알래스카에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