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께서 내려가신 시골에는 어느덧 집 한 채가 형태를 갖추었다. 누군가의 삶이 그려지는 공간이 되었다. 구석 구석 마무리 되지 않은 모습이 역력하지만 미완과 완성의 변증법이 연료인 분들이시니 당분간은 끄떡없으리라. 아니나 다를까 이미 임시 숙소에서 방을 빼고 부족한 대로 다다미를 넣어놓은 다락에 벌써 입주를 하셨다. 새 집에서 보내는 첫 밤, 모기장 안에 누워 온갖 곤충 소리를 방관자적으로 듣고 있으니 화음이 묘하게 아름답다. 평소라면 어림도 없는 생각이다. 역시 모기장은 위대한 발명품이며 인류는 아직 희망이 있다. 하여간 이곳의 매력이라고 한다면 단연 한켠의 숲인데, 온갖 잡목으로 뒤섞여있던 임야는 지난 몇개월 동안 아버지의 손길에 근사한 소나무숲이 되었다. 2년쯤 있으면 그늘이 생길 거라 한다. 기대가 된다. 그리고 기대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게 감사하다.

이대로 모든 게 끝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슬며시 찾아왔고 그걸 시작으로 일종의 소화불량 상태가 오래 이어졌기 때문이다. 펑션하지 않는 펑션은 고요했고 무서웠다. 그리고 그 공포에 대해서 말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최악이었다. 세상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았다. 아름답지 않은 세상이 싫었다. 이 깊고 깊은 이퀄리브리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강한 추진력이 필요했고 여행을 떠났다. 푸른 바닷가에서 햇살을 맞으며 맥주를 마시는 그런 평안한 여행은 결코 아니었다. 어른의 몸이 된 후로 이렇게 아팠던 적이 있었을까. 티벳은 그렇게 나에게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S 덕분이다. S와 나는 재수학원에서 만나 문학청년 H, 재즈광 J와 **사협이라는 그룹을 형성하여 안면도에서 캠프파이어를 둘러싸고 아프리카 원시부족이 친근해했을 법한 의식을 벌였고 H의 집 옥상에서 삼겹살을 구워먹다 세상에서 가장 에그조틱한 경험을 해보자며 아무런 계획없이 인도로 떠났으며 당시 잘나갔던 줄리아나에서 완전히 새된 싸이와 막춤 배틀을 떴다. 그로부터 십여년 지난 어느날 오랜만에 뭉친 우리는 헤어지는 길이 아쉬워 택시 방향을 돌려 밤사의 시루 안에서 기꺼이 콩나물이 되었다. 우연이겠으나 그곳엔 또 만취한 싸이가 등장했다. 강남스타일이 막 뜨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각자 일로 뜸하던 어느 날 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2007년 여름이었다. 문득 생각이 났다는 그는 티벳에 가자고 했다. 성적표의 숱한 권총들을 처치하기에 마음이 급급했던 나는 계절학기를 핑계로 그 제안을 거절했다. 그 순간의 결정은 9년에 걸쳐 숱하게 후회와 자조의 원천이 되었다. 다음은 항상 오는 그런 싸구려 커피가 아니었으니. 잊거나 풀거나의 이지선다인 이 문제에서 1번을 선택하기 전에 다시 한번 우리에게 기회가 찾아온 건 정말이지 운이 좋았다는 것 말곤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이번엔 놓칠 수 없었다. 핑계와 후회와 자조 사이를 반복하는 무한궤도를 깨기 위해서라도.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우리는 언젠가 카일라스 산과 마나사로바 호수에 가기로 했다. 누군가 10억을 먼저 벌거나 아님 10년 후. 마음에 드는 목표다.

쿨하게 살아보자고 다짐했던 스무살의 우리는 어느새 우리가 그리던 쿨함과는 82광년 쯤 떨어진 어느 행성에서 빼도박도 못할 아제가 되어있다. 그 사이 S는 이해심 깊은 아내와 끝없이 에너제틱한 아들을 하나 두었다. 세가족이 아무말 없이 무심하게 옥수수를 먹는 장면을 회상하며 그는 행복하다 했다. 원피스의 루피같은 그만의 웃음을 지으면서. 나는 끄덕였다. 그 웃음은 믿을 수 있다.

땡큐 S.